
서울역에서 KTX로 30분여 달리면 도착하는 충청남도 천안시. 2009년이면 천안에 개량 배나무 재배 역사가 꼭 100년이 된다. 우리 토종 참배나무, 돌배나무와 함께해온 천안시에서는 ‘2009 천안웰빙식품엑스포’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하늘그린’ 상표로 단일화한 지역농산물은, 1290년부터 재배한 호두를 비롯, 오이, 표고버섯, 흥타령 쌀 등 128개 제조업체에 달한다. 유럽에서는 녹색관광(그린투어)이 각광받고, 옆나라 일본에서는 100만 명 귀농운동을 벌이고 있다. 친환경 열차를 선언한 코레일과 함께, 농장에서 식탁까지 한국형 참살이 체험을 찾아, 지난 9월 배가 한참 익어가는 천안을 찾았다. ![]()
"너 껍질 하얀 배 본 적 있니?"
"선배들이 일정표 보더니, '야 너 농사 짓다 오는 거 아냐? 밀짚모자 챙겨가'라더군요"
천안아산역에서 성환읍 왕림리의 대일농원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역시나 농사라곤 구경도 못해봤을 26살 모 주간지 최기자가 옆자리에서 말을 건넸다. 아닌 게 아니라 '농촌체험'이라는 여행 일정은 배 수확, 포도 수확, 오미자 수확.. 수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 트랙터 타기..’ 배바지라도 입고 왔어야 하는 건 아닐까?
대일농원에서는 농장 주인 가족이 배를 깎아놓고 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종류별로 보여주고 맛도 보여준다. 배는 다 똑같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모름지기 배의 고장 천안에서는 껍질이 흰 배 '황금배'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 농장 왼편에는 사과가 오른편에는 배가 수확기를 맞아 탄탄하게 익어가고 있다.
체험을 신청한 관광객들에게 배낭이 하나씩 나온다. 배는 하나하나 종이봉지에 싸여 있다. 배 밭에 흩어진 사람들은 진 땅으로 발이 빠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더 큰 배를 찾으려 아우성이다. 배를 딸 때에는 마구 잡아당기면 안 된다. 둥근 배를 아래에서 받쳐들고 위로 슬며시 올리면, 배가 꼭지에서 톡 하고 떨어진다.
배 밭 건너편에는 천안 농산물의 5%를 점하는 홍옥이 있다. 발그레한 분홍빛 사과가 풀빛 농원을 점점이 물들인다. 버스가 떠날까 부랴부랴 배와 사과를 따서 농원 길을 걸어 나온다. 배 찾아 사과 찾아 구석까지 들어갈 때엔 넓은 줄 몰랐는데 나오는 길이 멀다. 배 위에 종이를 대고 활자를 따라 볼펜으로 꼼꼼히 칠해 넣으면, 저녁 즈음 배 껍질 위로 글자가 또렷하게 올라온단다. '사랑해♡'라는 문구를 새기며, 점심식사를 하러 떠난다.


청포도, 오미자 따 담는 농촌 체험
발빠르게 농촌문화체험을 도입한 천안에는 도라지 캐기, 매실수확, 옥수수, 토마토 수확(7~8월), 표고버섯 수확체험 (3~11월)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있다. 봄에 매화꽃이 화려한 매실농원, 6월 초에는 매실수확 및 가공을 할 수 있다. 10월에 방문한 관광객들은 매질장아찌 나오는 식당에서 푸짐한 참살이 밥상을 차려 받는다. 홍어회에 삼겹살까지 정식 가격은 1만원이다.
입장면 하장리의 엄마 포도원에서는 배가 부르고 나른할 때 잠을 깨워줄 체험 행사도 있다. 손수건에 꽃물을 들이고 트랙터를 타고 농촌 마을을 돈다. 손수건 물들이기를 위해 숟가락을 마구 두드리는데,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체험이라고 한다.
자리를 옮겨서는 포도를 수확할 차례다.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청포도를 딴다. 천안 거봉 포도는 알이 굵어 알사탕처럼 단 맛이 난다. 캠벨도 있으니 포도라고는 애초부터 상자에 담겨 나오는 줄 알던 서울 촌뜨기도 새로운 눈을 뜰 만하다. "포도에도 종류가 있었어? 그런 거야?"
황갈색 배, 분홍 사과, 연초록의 청포도까지 땄으니 이번엔 빨간 오미자를 딸 차례다. 광덕면 대평리의 청산농원에는 빨간 오미자가 나무끼리 서로 엉켜서 왼쪽으로 감고 올라간다. 수확기를 두어 달(9월 초 기준. 현재 날짜로 보름여) 남겨둔 상태다. 꽃 피는 시기는 줄기마다 다른데 보통 추석을 일주일 남기고 전후 가량이다.
천안 특수작물로 20여 농가가 오미자를 재배 중이다. 청산농원의 오미자 밭이 그중 최고 면적이다. 농원 주인에 따르면, 5년을 시범으로 운영했는데 기후가 맞아 재배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따냐고요? 특별한 건 없어요. 소쿠리를 아래에 받치고 열매를 제치면 톡톡 떨어지죠."
퇴비를 써서 양분을 준다는 오미자, 다섯 가지 맛 중 단 맛은 바로 퇴비에서 온다고 한다. 천식이 있거나 기관지가 안 좋다면 오미자를 추천한다며, 농원 주인이 민간요법을 귀띔해준다. "건오미자를 유리병 큰 데에 담고 빨갛게 우려내요. 그 다음에 생계란을 껍질 닦아서 띄우고 1주일마다 하나씩 꺼내 드시면 좋다고 합니다."


고라니와 씨름하는 식물원 노교수
천안 동면 덕성리를 찾아가면, 서울에서 아파트 팔고 내려와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노교수도 만날 수 있다. 서울대 고광출 교수가 정년퇴임 한 뒤 모든 걸 쏟아 부은 동산식물원이다. 2년 반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쌓고 또 쌓았다는 고려청자 모양 매병, 주병 탑이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옥잠화의 향기를 지난다. '어머니처럼 이익을 주는 풀'이라는 익모초도 지난다. 코리우스, 달리아, 은쑥, 벌개미취에 이르기까지 바라도 보고 만져도 본다. 작은 산 형태의 식물원을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온다. 조수 한 명을 데리고 혼자 운영 중이라는 고 교수의 해설이 재미있다.
"귀한 식물들을 고라니가 와서 뜯어먹어요. 미워죽겠습니다. 살생할 수는 없고, 그러니 고라니가 안 먹는 식물을 심죠. 이를테면 산수국 같은.."
유독 '한국 전통 정원(The Korean Traditional Gardens)'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희귀한 식물들과 함께 정원 곳곳에 자리잡은 조형물 때문이다. 해시계와 십장생, 태극과 완자 문양 화단, 커다란 항아리를 깊숙이 묻어 은은한 소리가 나는 범종, 어미돼지 새끼돼지 모인 모자돈, 완만한 굽이의 돌 축대. 꼭대기에서는 국궁을 쏠 수 있다.


풀벌레 소리와 꽃 넣은 비빔밥, 오감이 행복하다
'이것도 들으려코 저것도 맞으려코' 전원생활에 시간가는 줄 모르더라도, 한 곳 더 찾아야 한다면. 추천할 풀빛 공간이 하나 있다. 수신면 신풍면에 위치한 허브 파라다이스다. 허브 정글 식물원에는 가공 이전의 허브가 원래의 형체를 하고 은근한 향기를 뿜고 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식물원의 가지각색 허브를 넘어다니다 보면, 작은 분수, 원두막도 나온다. 노란 앵무새가 새장에서 모이를 쫀다. 매년 5월 허브축제를 여는 이곳에서는, 7,8월 코 끝을 확 터줄 허브 양초, 비누, 주머니 만들기 등 체험 행사도 운영한다. 허브 가공품 판매장도 있다.
점심으로 허브비빔밥을 먹는다. 조상들은 꽃을 뜯어 전도 부쳐먹고 술도 담가먹고 떡도 해먹었는데, '꽃도 식용'이란 사실을 오래 잊었던 걸까? 비벼먹으려 수저를 들다가 새뜻한 빨간 꽃에 눈이 호사하다. 발렌타인허브를 띄운 동치미가 곁들여 나온다. "고추장이나 이런 것들을 넣었는데도 거부감 없이 입 안에 향이 퍼져요.", "남다르고 깔끔하네요." 식사를 마친 객들의 감회다.
마지막으로, 천안 두레앙 와인을 마시고 늦도록 가든 파티가 있던 날 밤, 진귀한 체험 한 토막. 한바탕 춤추고 노래하던 사람들이 퇴장해 잠들면, 풀벌레들의 무대가 열린다. 골드힐 카운티의 캄캄한 새벽을 사방의 풀벌레 소리가 짱짱하게 둘러싼다. 호두부터 오이, 멜론, 흥타령 쌀까지 '하늘그린'(천안의 지역 농산물 상표)이 익어가는 소리다. 물 많은 천안배가 밤새도록 차오르는 소리다. 피노키오같은 도시키드, 사람 되는 소리다.
* 대일농원 011-727-4676 / 매실농원 017-232-4960 / 거봉마을 011-255-5192 / 엄마 포도원 019-307-3300 / 골드힐카운티 (041)585-1515 / 동산식물원 011-235-3743 / 허브파라다이스 010-7730-4500 / 청산농원 011-9817-0668 / 천안시농업기술센터 http://www.cacenter.go.kr 농촌자원개발팀 (041)521-29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