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의 계절 2월, 등 떠미는 기념일이 고마운 연인들을 위한 하루 코스 여행지. (* 함께 쓰인 사진은 2008년 11월 촬영분으로 현재와 계절적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놋그릇의 인연, 방짜유기박물관
대구 방짜유기 박물관은 동화사 인근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전시실에 유기의 제작과정 및 역사, 종류까지 빠짐없이 담았다. 품질 좋은 놋쇠를 부어 내 두드려 만든 놋그릇을 방짜유기라고 한다. 옛 유기공방에서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릇 밑바닥마다 방(方)자를 새겨 넣어 방짜유기의 유래가 되었다. 징이나 꽹과리 등 악기를 만들며 제기로 많이 제작된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상류층의 식기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시대 유기 공출로 많은 양을 수탈당했다. 해방 이후 변색 없는 스테인리스 그릇이 유행하며 유기는 점차 사라졌다. 농약 성분 검출기능, O-157살균 기능 등이 밝혀지며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술 보존이 희귀한 가운데 2007년 대구에는 방짜유기 전문 박물관이 들어서 방짜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유기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옹이 1,480여 점을 무상기부했다. 금색으로 얇게 펼친 쟁반, 찻잔, 주전자 등의 기증실 상차림에서, 정교한 장인 정신이 묻어난다.
1930년대 평안북도 유기공방을 연출한 재현실에서는, 유기장의 망치질을 흉내내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뜨겁게 달궈 네핌질, 우김질, 닥침질, 담금질, 벼름질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과정이 우리네 질긴 인연 같구나. 혼수로는 서양 도자기 대신 방짜유기를 장만해봐?!


밀지마! 우리 또 봐야지! 팔공산 케이블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릴 곳은 대구의 진산(眞山)이라는 팔공산 중턱. 케이블카 입구로 올라서기 전의 향토음식집 '山中(산중)'이다. 오리훈제와 들깨수제밥 등도 있지만 산뜻한 건강식을 즐기고 싶다면 곤드레 상채정식, 송이 돌솥정식을 추천한다.
삭힌 곤드레와 우엉채, 표고버섯 탕수 등 밑반찬이 싱그럽고 쫄깃하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채취한 산나물을 염저장법으로 보관한다. 송이로 지은 돌솥밥에 향이 살아있다.
후식으로 얼린 감이 나오는데, 들고 나오면 팔공스카이라인 케이블카로 오르는데 좋은 군것질이 된다. 11월경 가을 단풍 배경이 절경인 노란 케이블카는 해발 1,112m의 팔공산 정상으로 향한다.
대구 북동쪽을 감싸는 팔공산 봉우리들과 나란히 위치한 전망대 휴식처를 지난다. 아슬아슬한 정상에서 사진촬영하는 스릴이 있다. "잠깐, 밀지마! 뭘 더 뒤로 가라는 거야? 여기가 끝인데! 너 정말 나 다시 보기 싫은 거니" (안전사고에 유의합시다)


동화사, 욕심없는 천년애를 기약하다
날이 저물기 전 드디어, 팔공산 남쯕 기슭의 동화사에 발걸음한다. 팔공산이 푸르게 펼쳐진 가운데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이 모여든다. 작은 계곡과 산세를 중간에 낀 장대한 규모에 방문객 발길도 잦다. 허파 깊은 곳까지 천 년의 호흡을 들이키는 호젓함이 머문다.
템플스테이로 꾸준히 객들이 머무는 동화사, 첫번째 터인 비로암에서 보이차를 마신다. 손 두는 법부터 우리옷에 담긴 원리까지 우리 다도를 배운다. 열려있는 뒷문 밖으로 푸른 대나무 숲이 내다 보인다. 곧고 청명한 천년애를 욕심없이 기약하기,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동화사는 493년 '유가사(瑜伽寺)'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서거정은 대구 10경의 하나로 노래한 바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편액도 남아있다. 도학동 골짜기 대웅전을 중심으로, 8차례 재건을 거친 조사전, 칠성각, 봉서루 등 18~19세기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당간지주, 부도군 등 보물 여섯 점과 유형문화재도 곳곳에 있다. 소원을 빌며 어루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봉황알이 셋, 봉긋하게 모인 모양새가 오롯하다. 수마제전, 극락전 등을 왼편에 끼고 계곡을 따라 완만한 산길을 오른다. 크게 뻗은 나무들 아래, 그늘이 서늘하다.
비로암, 대웅전, 통일대불 등을 위시해 크게 세 곳으로 나뉘는 동화사의 마지막 터다. 통일대전을 향한 계단을 다 오르면 거대한 불상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 탑과 함께 서 있다. 원석을 옮겨 조성한 불상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석조통일약사대불이다.


역사를 따라 걷다, 약령시
동화사와 팔공산을 빠져 나온다. 오래전 걸음을 따라 또 한 곳을 걷는다. 중구에 위치한 약령시다. 1년에 한 번 약령시 축제가 열리는 이곳에는 약탕기를 올린 기둥이 서있다. "아무리 좋은 약재라도 대구시 바람을 쐬지 않으면 질이 안 좋다"는 게 대구 약령시의 자부심.
102년된 역사의 거리이기도 하다. 일제 시대 암암리 독립군 지원 자금이 모여든 시장으로, 육사가 17세의 나이 건너온 항일투쟁의 거점이었다. 1층 도매시장이 열리는 약령시 전시관 뒤로 대구 최초의 교회가 보인다. 이상화 고택도 인근이다.
그 외. 번화한 대구 중심가에서, 젊은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동성로 밤거리를 거닐어도 좋다. 대구역에서 중앙파출소로 이어지는 동성로 에는 '섬유산업의 본고장'답게 크고 작은 옷가게가 빼곡히 불을 켜고 있다.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늦도록 오간다.
마지막으로 대구의 추천 저녁식사는 동인동 찜갈비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담겨 나오는 달달한 찜갈비는, 다른 지역 갈비찜과 향미가 다르다. 찜갈비 12,000원 상당, 한우 찜갈비는 20,000원 상당이다. 순한 맛, 중간 맛, 매운 맛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어지간한 '강인한 혀'가 아니라면 중간 맛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 그래도 매워 눈물이 나네. "왜 우니 너" "여행 끝나는 게 아쉬워서!"
동대구역에서 서울까지 KTX 타고 돌아오는 길, 서로 기댄 연인이 꽉찬 하루를 나누다 꾸벅꾸벅 존다. 한 점 같은 찰나라도, 오늘은 천년을 살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