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일요일, 영월로 떠나는 새벽 청량리역까지 택시를 탔다. 마침 기사의 고향이 영월이라 했다. 곡식이 없어 옥수수로 밥을 해먹던 가난한 시절을 뜬숨 섞인 입담으로 풀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쯤에는 관광지 이야기를 했다. 단종의 무덤 앞에 깊은 우물이 있는데, 늘 말라있다 했다. 일 년에 한 번 제사 때가 되면 귀신같이 물이 고인다 했다.
청량리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며 기사는 300원을 깎아주었다.
3미터 수심의 서강을 면하고 육륙봉이 첩첩이 둘러싼 나루터에 닿았다. 청령포다. 고작 4월인데 햇볕이 쨍쨍하게 머리 위로 익었다. 홍수가 많아 오래 머물기도 힘들고 육륙봉 뒤로는 깎아지른 벼랑이라 천연감옥이었다는 솔밭이 건너다보였다. 열 여섯 살 단종의 유배지로 낡은 배가 노란 철판 위 40여 명을 꽉 채워 날랐다.
당시 700명 남짓 살았다는 영월, 배를 건너 빽빽히 들어찬 소나무 숲 가운데 단종이 기거한 기와집과 초가 지붕 행랑채가 들어앉았다. 밀랍인형으로 궁녀들과 단종, 읍하는 신하를 세웠는데 사방의 소나무도 단종이 기거한 집을 향해 둥글게 굽어 있다.
90도로 허리를 굽힌 소나무 한 그루는 바닥에 쓰러질 모양새인 걸 관에서 버팀목을 대 세워놓았다. 충절의 소나무라 했다. 정치적 수사는 멀고 멀어 고리타분할지언정. 어린 나이 부당히 꺾였을 혼, 이를 기릴 애절함에 세월 차가 있을까.
승정원일기에 기초해 복원한 집을 나와 단종이 올라타 놀았다는 관음송을 지나면, 헤어진 부인을 그렸다는 망향석이 서강 줄기를 바라보고 가슴 높이만치 쌓여있다. 영월 시내가 멀찍이 건너다보이는 높은 지형이지만, 28일 여정으로 쫓겨 떠난 서울과의 거리는 멀었다.
신하들이 벌인 2차 단종복귀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단종은 사약을 받고 관포원에서 죽었다. 궁녀들은 동강 절벽에 몸을 던졌다. 맹목적 정절. 시대의 순수를 담은 절개라는 그릇은, 사육신, 생육신 선비들의 앞날도 앗아갔다.
청령포를 나와 영월 시내로 들어서면 장릉 입구에 단종역사관을 들릴 수 있다. 운보 김기창의 화폭 속 단종을 스쳐 지하로 내려가면, 단종을 끝내 따른 신하들이 사료로 잠들어 있다. 숙종 때 복원된 단종의 사체를 수습 묘를 꾸민 영월호장 또한 기리고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 장릉을 올려다보는 터에는 정말로 우물이 보였다. 그러나 한번 꼬인 이치를 내쳐 풀어줄 기적은, 마음 속에서 가능할 뿐일까. 서울에서 택시 기사가 말했던 영천에는 제사철이 아닌데도 밑바닥에 물이 고여있다.


선돌, 햇살 노니는 옥빛 서강과 한반도의 강바람
장릉을 나와 다시 서강 줄기로 접어들었다. 태백산맥 자락에 닿은 산 길을 따라 소나기재에 오르자 차가 멎었다. 주차장 터가 널찍이 닦였고 대형 지도가 섰으니 관광지일 터인데, 어디로 가는지 모를 산길이 계단으로 층층이 이어졌다. "다 왔어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선돌이라는 심심한 이름, 그러나 영월을 찾을 하고많은 이유를 말없이 앗아갈 선 풍경이었다.
색조를 달리해 황토옷을 기워입은 육지를 둥글게 감싸고 옥빛 강이 완만히 흘렀다. 두 갈래 진녹의 바위가 왼편 전망대를 앞두고 70미터로 솟았다. 함께 안내를 나온 앳띤 부부가 "서 있어서 선돌이죠" 웃었다. 시야를 넘어 좌우로 뻗은 서강 위, 햇볕이 분말로 노닐었다. 선돌은 비석이 남아있는 투신의 장소이자 소원을 비는 장소로 유래가 깊었다.
선돌에서 서북쪽으로 또다른 한국화 한 폭을 찾아 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박물관 특구답게 영월곤충박물관이 눈에 띄었다. 호야지리박물관의 현수막 광고도 걸려 있다. 강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맑은 서강을 끼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꺽지와 빠가사리가 잡힌다고 했다.
'당나귀 타는 원시마을'도 가는 길 도중이기에 도로변에 매인 검은 당나귀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영월 주민이 개인적으로 당나귀를 모아 길러 체험 관광화했다. 바쁜 길이 아니라면 맞은 편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시큰둥한 당나귀와 눈을 맞춰보는 일도 재미있다.
유난히 주름 많은 검은 돌을 줄줄이 밟아 한반도지형에 들어섰다. 제법 객이 드는 방문지로 돌탑이 쌓인 입구에는 크게 음악을 튼 주막도 섰다. 1년에 한번씩 뗏목과 줄배를 띄우는 한반도 지형 축제도 조촐하게 열린다.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 청령포 물이 시작되는 서강 상류, 강바람이 거셌다.
철따라 무궁화가 핀다는 전망대에서 서강 건너 바라다보이는 한반도 지형은 누가 억지로 만들었나 싶게 기막힌 모양새였다. 실은 2000년도에 서강 트래킹 코스를 찾다 발견된 새로운 관광지다. 수달, 비오리, 원앙이 사는 환경의 보고임은 같지만, 급물살로 트래킹하기 좋은 동강에 비해 서강은 물살이 느리다.

민들레 무침에 콩냄새 나는 순두부, 시장에서는 메밀 전병을
그대로 강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영월의 유명한 먹거리 다하누촌이 나온다. 그러나 묵어갈 객이 아니라면 영월 시내에서 지역민의 추천을 좇아 한 끼를 먹는 것도 좋다. 관광객들이 필수로 찾는 코스는 보리밥에 된장찌개인데, 지역민들의 입맛은 어디를 선호할까. 아직 완공도 안된 채 방송사 방영 현수막을 거는 사기성 광고도 있으니 간판만 보고 알 수는 없다.
결국 집에서 주는 듯한 밥이 최고라는 추천에 따라 40년 된 지역 토박이 집을 찾았다. 비지찌개, 청국장, 순두부 단출한 식단을 내건 김인수할머니 순두부집이었다. 살던 집에 방을 내어 손님을 받는 듯한 작은 가게로 '평창식당'이란 문패도 하나 걸었다. 이름을 바꾼지 얼마 되지 않았다.
넷이서 상을 받으니 은쟁반에 반찬이 열 대여섯 개 얹혀 나왔다. 달걀 조림, 고추 장아찌처럼 짠 밑반찬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는 '쏙쌔'라고 말하는 씀바귀 뿌리, 속새 무침이 나올 때도 있다. 방문일에는 민들레 무침이 나왔는데 영월에서는 아직 흔히 해먹는 밑반찬이라고 했다. 계란도 해물도 없는 순두부는 가공 하나 전 단계로 콩 냄새가 솔솔 났다.
차를 타고 골목을 도니 금세 <라디오스타>의 촬영지 청록다방이 보였다. 시내라기에는 한적하고 낮은 건물들 속 뉘엿뉘엿 시간이 지났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기 전, 간식 한 끼 술 한 잔 한다면 골목 시장을 누벼볼 일이다. 가게 입구만큼 작은 서부 시장 입구에는 지하상가마냥 가게 여럿이 벌어져 있었다. 안쪽으로 쭉쭉 들어가니 전국에서 어떻게 알고 택배 주문을 해온다는 메밀 전병 점포가 나왔다.
3개에 2천 원 하는 메밀 전병은 메밀 안에 당면, 김치, 양배추, 양파 등을 넣고 들기름, 참기름으로 부쳐내 돌돌 말았다. 이전에 잡채만 넣고 하다가 20여 년 전부터 누구인지 모르게 여러 재료를 넣기 시작했던 것. 김치 부침개의 강원도 버전일 메밀 전병은 맵고 짭짤한 편이라 별다른 양념장이 필요 없다. 서울로 들고 올라올 거면 아이스박스 포장을 부탁하는 게 좋겠다.
이외에 좁쌀 막걸리는 메밀 전병과 잘 어울리는 영월의 술이다. '별' 말고도 볼 것 많은 영월. 못다 한 술은 시장에 남겨 두고, 못다 핀 영혼은 옥빛 서강에 뿌려두고 올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