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희망한다 - 
새라 파킨 지음, 김재희 옮김/양문
페트라 켈리(Petra Kelly, 1947-1992) 독일 녹색당 창립의 주요인사. 생태와 여성, 비폭력을 기조로 하는 정치를 주창했다. 실천하는 시민운동가였으며 40대 나이에 스무 살 연상의 애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페트라 켈리-나는 평화를 희망한다>는 페트라와 동시대를 살아간 영국 녹색당 출신 환경운동가 새라 파킨이 페트라의 추모 물결 속에 쓴 책이다.
페트라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해 사망 분석으로 끝나는 책의 가운데에는 녹색 정치인 페트라가 태어나고 살아간 과정을 시간 순으로 기술했다. 나치 독일의 영향과 페트라가 태어난 바이에른 주의 보수적 특성. 미군 장교였던 새 아버지로 인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사정 및 치어리더를 하다가 정치의 길을 걷게 된 과정 등이다.
훗날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 자그마한 체구의 열정가는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로자 룩셈부르크를 존경했으며 그와 동시에 3M(마르크스, 마르쿠제, 모택동)과 낡은 계급 투쟁, 혁명을 주창하는 구 진보 세력과 전선을 그었다. 미국에 대한 비난만큼 소련을 비난했기에 녹색당 내 좌파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여성, 생태, 비폭력'
'아이들과 개가 오가는 선거 총회 가운데 녹색당의 상징 수선화를 흔들던' 페트라는 자신이 바라보던 비전을 향해 어떤 논리로 걸어갔던 것일까.
독일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고 유럽공동체 결성에도 사무행정관으로 참여한 페트라, 그의 정치사상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여성, 생태, 비폭력’이란 말로 요약되었다.
페트라가 사전 지식이 없는 기자들을 상대로 녹색정치가 뭔지를 알아듣게 설명하느라 궁여지책으로 요약한 말이 바로 '여성주의, 생태주의, 비폭력'이었지만, 언제나 왼쪽 아니면 오른쪽 정치에만 익숙한 기자들에게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번번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애를 쓰며 간신히 끼워 맞춘 표현이 '일종의 해방적인 사회주의'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아!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그러니까 녹색정치라는 건 사회주의에 어떤 걸 가미한 거구나!"라는 식의 엉뚱한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페트라의 이야기는 초록 빛깔을 입힌 사회주의가 아니라 구태의연한 사회주의를 해방시킨다는 뜻이었다. (214쪽 '녹색모색' 중)
1972년 사민당의 쿠뷔를 만나서 사상적으로 끌려가면서도 혁명 사상에 거부반응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나는 소비자반대운동을 지지하는 신좌파 젊은이들이 곧 혁명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식의 희망에 공감할 수 없다 ... 하인츠 쿠뷔는 이탈리아 피아트 자동차의 노동자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주의청년회 등에서 그 희망을 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 신물이 나도록 보았던 그 폭도들, 진지한 성찰이나 수고한 이상이 결여된 폭력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140쪽 '유럽으로의 귀환' 중)
카톨릭 보수파 외 좌파를 향한 불편함이 있었다는 말이다. 훗날 페트라를 살해하고 자살한 동반자, 바스티안은 녹색당을 나오며 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쓰고 있다.
바스티안은 어설픈 공산주의자들이 달려들어 당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든다고 혹독히 비난했다. 그는 이들이 생태주의 녹색정신과 비폭력 대신 '시대착오적 계급투쟁'에 연연해 '반미 감정에 휘둘리는 폭력'을 삼가지 못한다고 질책했다. (239쪽 '그녀의 정치' 중)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촘촘한 논리로 정치사상을 소개하기를 기대한다면 책에서 큰 성과를 얻기는 힘들다. 나이 많은 남자들과 종종 연애관계였으며, 가정 있는 남자들과 깊은 우정의 인간적인 교류로 성(性)을 받아들였다는 가십성 서술도 들어있다. 26살 당시 첫 애인이 60대 은퇴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이외에 베트남전에서 반핵시위, 역사 속을 갈지자로 뛰어다닌 페트라의 행적과 녹색당의 독일 내 선거 성과를 좇는 일만으로도 책은 숨가쁘다. 그러나 페트라는 “대량 파괴를 꾀하는 무기들은 강간을 비롯해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이며 개인적인 폭력'과도 직결된다”는 직관을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따라갔다
벌써 한 세대 전의 여성 이론을 따라가며, ‘포르노 반대’의 구호가 여기에 매달린 비정규직 성노동자들의 생계를 함께 닫아버릴까 우려될 현대의 독자일지라도. 고만고만한 여성 정치 속 열의가 사그러든 독자에게, 페트라의 전기는 다시 불씨가 된다.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할 법한’ 생각들, 그러나 온 몸을 던져 세계 정치 속에 이를 구현했던 열정가의 일생이다.
이제 우리세대는 얼마나 촘촘히 그 뒷 페이지를 쓸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