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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처럼 놓인 징검돌에 한낮이 익어간다. 묵 빛이 번져간 하늘은 쿠릉 소리를 내더니 번쩍하고 쪼개진다. 한바탕의 소나기가 퍼붓는다. 여름 볕에 데인 자국이 서서히 아문다. 한 해도 또 절반이 갔다. 시간에 젖는다.

중앙선 전철로 양수역을 찾다

서울 근교 찰나의 여행지를 찾는다면 경기도 양평 양서면이다. 6월 13일 개장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까지 버스도 바로 닿는다. 6월 30일 소나기 내릴 듯 찌푸린 하늘, 2009년의 반을 접어두려 국수행 중앙선을 탔다. 청량리 역에서 40여분 달리니 한강 흐르는 수도권 동부, 양수역에 닿았다. 

역사 계단을 내려와 가게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양수역 정면이 바라보인다. 내리막길을 따라 곧장 내려간다. 연 밭이 드문드문 눈에 띄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먼지 쌓인 문이 삐걱삐걱 열릴까 싶은 허름한 구멍가게 옆으로 오토바이가 곧잘 지나간다.

600미터쯤 내려가면 도서관을 앞두고 건널목이 나온다. 두물머리, 세미원을 알리는 이정표에서 양서문화체육공원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멋 부린 돌담을 따라 색색의 연꽃이 피었다. '물을 보고 마음을 씻고 꽃을 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세미원의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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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흐드러진 전통미, 세미원

지반이 약해 하이힐, 카메라 삼각대는 반입 금지다. 여자들 발 크기에 맞는 고무신을 입구에서 빌려준다. 맨발에 찰싹 달라붙는 남색 고무신이다. 태극 문양 원형 돌문 불이문을 지나면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를 들을 일이다'라는 고은의 시구가 손을 맞는다.

돌길을 밟고 석등을 지나면 연 잎 떠있는 물결을 관람하는 관란대가 왼쪽이다. 중앙에는 분수가 솟는 장독이 둥글게 모여있고 연자돌을 밟아 내려가면, 연꽃 봉오리 탐스럽게 벌어진 연못과 정자가 나온다. 연잎 사이 작은 석탑과 돌 거북 상이 호젓하다.

양수대교를 끼고 연꽃이 흐드러진 산책로를 밟는다. 물 흐르는 징검돌을 총총 지나 입구로 돌아나온다. 잰 걸음으로 돌아도 한 시간여가 금새 간다. 입장료는 3천 원으로 양평의 유기농 재배 농산물을 선물로 받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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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세월 흘리는 두물머리

태양이 이글거리기 전 남한강을 따라 두물머리로 향한다. 도서관 앞 이정표에서 주말장터가 서는 두물머리 길로 향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는데, 자줏빛 꽃 너머 종이학 모양 카페가 용늪 물결 그림자로 깊게 서린다. 20분여 이어지는 두물머리 산책로는 양팔을 벌리면 꽉 찰 아담한 너비의 흙 길이다.

망원렌즈로 새 사진을 찍는 사진가와 연인들, 가족들이 길 따라 걷다 연 팥빙수를 사먹는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맞닿아 한강으로 흐르는 '두 물의 머리'에는 400년 묵은 느티나무가 또 한 번의 한여름을 맞고 있다. 두물머리에서 유유한 물살로 반 해를 보낸다. 

어김없는 한 끼 점심은 산책로를 도로 나와 도서관 맞은 편, 양평군이 맛 집으로 지정했다는 육콩이네 순두부를 찾는다. 지역 주민이 6-7년 전부터 유기농 인증 농산물로만 식단을 꾸려온 한식당이다. 제일 많이 찾는다는 쌈밥 정식은 순두부에 제육볶음, 찰진 묵 등이 한 상으로 나온다. 밑반찬은 여러 번 덜어먹을 수 있는 대신 남기면 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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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디단 우리말의 빗방울, 소나기마을

점심식사로 뜨거운 햇볕을 피했다면, 마지막 행선지는 소나기마을이다. 청량리에서 수능리까지 가는 8번 버스가 소나기마을 개장에 맞춰 노선을 연장했다. 식당 인근 정류장, 오후 세 시 오십 분에 버스가 서는데 앞뒤로 십여 분 여유 두고 기다리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조언이다. 산골을 첩첩 지나 술 많이 드신다는 동네 할아버지도 천천히 내려드리고 버스는 마을 바로 앞에 섰다.

<별>에서 치기 어린 이상을 고집하던 얄궂은 소년은, <소나기>에서 꿈의 소녀를 만났을까. 유년시절 찾아온 애정은 소녀의 스웨터에 잔망스레 남았다. 황순원의 작품을 따라 이정표를 세운 소나기마을에는, 옹송그려 비를 피하던 볏 짚단이 곳곳이다.

황순원 작가가 고이 잠든 분묘를 곁에 두고 유품과 전자 책을 담은 문학관이 2층 건물로 섰다. 빗방울 떨어지고 천둥 번개 치는 상영관도 있다. '순수와 절제의 미학'으로 우리말을 단아하게 지켰던 작가다. 쪽빛구름쉼터, 갈밭머리쉼터, 촌장실, 문학관을 구성하는 방 이름 하나하나가 달디단 말의 빗방울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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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oy media
2009/07/03 16:42 2009/07/0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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