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어느 박람회장 끄트머리에서 지인의 지인을 만났다. 대학 시절 부산 쪽에서 여성운동을 했고 웹진에서 예비역 문제를 건드려 된통 사이버테러를 겪었던 활동가였다. 사회 생활하면서 우연히 지인의 지인으로 근황을 전해 들었는데, 사진 말고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잡지에서 동성애인과 한국을 떠난다는 소식을 읽었기에 그 말이 맞는지 물어봤다. 뜻밖에 아이도 벌써 입양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물어봤다. "주변에 지지해줄 지인들은 많이 있나요?" 그러다 꿈이 깨었다.
참 개꿈이지만, 가부장 가족에 균열을 내는 입양이 꿈 속에 끼어든 것도 우연은 아니다. 개정가족법 시행 2년 차, 상속 유류분 제도조차 딸들은 활용 못하고 있으며 사회 내 여성의 지위는 지지부진해 보인다. 독신자 입양은 2년 전 한국에도 도입이 되었으나 실제 입양 과정에서 까다로운 편견에 부딪친 비혼자들의 토로가 들려온다. 동성애자는 차별금지법에서도 차별당했다. '성인지 예산 내려보내면 축구장만 늘더라'는 담당관의 한숨을 들었던 게 1년 전 여성의 날, 당 사업은 여성할당제 정도로 현장에서 헛돈다. 한국의 단골 구호인 '뜨거운 가족애'가 아이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냐? 그렇지도 않다.
아름다운 인연 - 
현덕 김 스코글룬드 지음, 허서윤 옮김/사람과책
한국이 버리고 스웨덴이 기른 아이들
한국전쟁 당시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썼던 이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 애쓰는 현재에도, 한국은 해외입양 논의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에 입양된 한국인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53명으로 매년 약 109명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에 뒤이어 2위에 해당한다.
반면 입양을 널리 받아들인 나라는 1998년 이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다. 아동의 1%가 해외입양아로 다문화 사회에 일찍이 접어든 스웨덴의 경우, 최소 25세 이상 나이로 생부모 동의, 양부모 합의를 입양 조건으로 한다. 동성부부와 독신가구도 기준 합당 시 입양이 가능하다.
입양 완료 이후에는 어떤 경우에도 번복할 수 없다. 합법적인 유급 출산휴가와 국공립대학 진학 때까지의 학비 진학, 아동나이 만16세까지의 양육보조금 지원 등 복지도 부럽다. '모든 아이들은 하늘의 아이, 모 또는 부는 잠시 아이를 위탁해 기를 뿐이다'는 사회적 양육의 가치관인 셈이다.
물론 모든 입양아들이 '인생의 또 다른 기회'로 입양을 받아들이고 성공적으로 적응하지는 않는다. 입양아 자살률에 관한 통계도 나와있으며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를 버려야 했던 어머니들을 위한 계획이 있습니까"
명암을 고루 담은 입양 사례집 <아름다운 인연-스웨덴이 기른 우리 아이들>은 실제 입양아들이 어떤 사랑과 부적응을 겪는가 들여다볼 기회다. 스웨덴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30여 년 입양아, 양부모를 치료한 현덕 김 스코글룬드가 열 여덟 개의 사례를 모아 <갈망>이라는 원제로 스웨덴에서 2006년 출간한 책이다.
책 속에는 행복한 가정에서 원만하게 자라난 아이들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생모를 찾아 헤매다 "왜 나를 버려야 했는지" 물어야 했던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생부모 역시 원하지 않던 아기를 얻기도 한다. 원하든 않든 모두가 소중한 보석처럼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은 입양아든 친생아든 같다.
몇 년 전 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난 한 입양아가 물었다고 한다. "자식을 포기해야 했던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 측에는 이 불우한 여성들을 위한 계획이 마련되어 있습니까? 편모들도 자식을 버리지 않고 기를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까지는 다문화지원도 한국 적응에 초점이 쏠려 있다. '정상적인' 혼인 외에서도 아이를 버리지 않도록 여성의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사회인식이 뒤따라야 한다. '까망대가리'로 먼 나라에 옮겨 심어졌던 입양아들을 앞에 놓고, 한국의 장관은 이를 당당히 약속할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