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말 웃기는 도둑들, 지난 토요일 오후 세 시 코엑스 아트홀 무대에는 <늘근 도둑 이야기>가 올랐다. 배우라고는 단 세 명만 나오는 소극장 연극이다. 1989년 초연 이래 2008년 4차 앵콜을 거듭하고 전국 16만 관객을 동원한 시사 풍자극으로 8,90년대 묵직한 시대정신을 담았던 무대 전통을 잇고 있다.
도둑도 하청 비정규직은 싫어
2009년 새 대통령의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두 명의 늙은 도둑은 노후 대책을 위해 한 탕을 계획한다. 진귀한 미술품들이 걸려 있는 앞에서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숙한 한 패지만, 대통령 여덟 분을 모셨다는 늙은 도둑의 정치풍월이 영민하다.
어두운 가택에서 두 도둑의 주거니 받거니 하소연으로 전반부가 흘러간다. 비루한 인생살이를 여유 있는 농으로 건네는 힘이 객석을 헤집는다. 새벽 개 짖는 소리와 취객의 주정이 딸깍, 숨 넘어갈 듯 유창하던 술자리 만담의 마디를 끊어낸다.
수익 분배를 두고 "내가 무슨 비정규직이야? 똑같이 일하고 덜 받게?"라고 싸우고, 수사관의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에 "난 하던 일도 누가 시키면 안 하는 사람이야!"라며 분노하는 도둑의 자존심은, 경직된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고 오래 묵은 동심으로 관객을 웃게 한다.
남루한 삶, 익살로 청한 화해
생계형 잔 도둑질과 상습사기, 18번의 감옥살이에서 는 것은 눈치 빠른 호흡이다. 젠 체하는 어떤 상황도 뒤집어놓는 한 쌍의 능청은, 수사관이 반대항으로 등장한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는다. 수사관은 검은 양복 쫙 빼 입고 버럭 호통을 치는 권위의 상징이다.
물 떠오는 '이양'을 거느린 수사관의 힘은, '높으신 그 분'으로 이어지는 조직의 권위에서 나온다. 그 역시 상사로부터 전화가 오면 무릎 꿇고 벌을 서야 하는 피라미드에 속할 뿐이다. 출신 지역과 직업을 넌지시 꺼내놓으며, 도둑들은 소외된 '부스러기'들의 불운을 위로한다.
별 볼 일 없는 삶에 훈장을 주는 따스함은 '늘근 도둑'이 지닌 강점이다.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풍자보다는 에둘러 피해가며 권위를 놀리는 웃음, 해학의 해(諧) 자에 화해의 뜻을 넣은 한국적 낙관이다. 다만 여자는 외모를 겨냥한 유머, 남자는 정치인을 빗대는 유머로 고착된 한 켠의 보수성이 아쉽다고나 할까.
(상단 사진 자료 협조 = 연극열전)
평생 보는 연극, 강남 소극장 코엑스 아트홀
공연의 불모지 강남이라지만 <늘근 도둑 이야기>는 스리슬쩍 고정관념을 넘어 흥행 중이다. 대학로 상명아트홀과 삼성동 코엑스 아트홀에서 동시 상영하며 강남 좌석점유율이 95%로 대학로보다 높다.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열전 홍보팀 한지혜 씨에 따르면 유동인구가 많고 주차 공간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 층이 많이 찾는 대학로와 달리 지역의 특성 상 직장인 관객이 많다. 직장인 10명 이상 단체 관람시 40퍼센트까지 할인하는 문화회식 이벤트도 더 활성화했다.
코엑스 아트홀은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2층에 위치, 강남에 숨어있는 소극장이다. 218석의 아담한 규모이며 2층 객석에는 회전의자가 무대를 바라보며 놓여있다. 2004년 개관한 이래 연극, 무용, 음악, 뮤지컬, 국악 및 예술영화 등을 두루 수용하는 메세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