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돈섹스와 돈 - 8점
아일린 미핸 외 엮음, 김선남 외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상업광고가 한 편 있다. 죽은 시체와 같은 포즈를 취한 모델의 다리는 뒤틀려 있다. 목에는 검은 가죽 끈이 걸려 질식사를 암시한다. 또다른 광고도 있다. 이탈리아의 고급 구두 회사는 성폭력 당하고 내동댕이쳐진 여성 모델을 광고에 실었다. 뒤의 나무에는 속옷이 걸려있고 정면에 하이힐이 놓여있다.

갈 데까지 간 상업 광고는 폭력적인 욕망을 꺼내 기형적으로 전시한다. 인간적인 교감이나 동정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욕망만이 공중에 떠 있다. 돈과 섹스가 유일하게 통용되는 가치다. 문제는 위와 같은 문화가 실제 감수성을 무디게 하고 폭력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섹스에 돈 더한 권력. 비인격화

올해 4월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출간된 <섹스와 돈>의 부제는 '페미니즘과 정치경제학 그리고 미디어'이다. 19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으로 서문에 따르면 원래는 미디어 업계 취업 문제를 다루기 위해 출발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정치 보도에서 여성 의원을 무시하는 편파적인 관행부터 텔레커뮤니케이션 고용 통계까지 두루 내용을 확장했다.

여성은 주로 '섹스와 돈'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상품화는 가슴이나 다리 등 신체의 일부만에 행해질 때 더욱 비인격적이고 위험하다. 레즈비언과 게이 매체 및 광고 시장을 분석한 장도 있다. 전문직 중산층 백인을 중심으로 섹시한 소비 이미지를 조장했던 탓에 늘 폭력의 위협을 받는 실제 동성애자들을 잡지에서 지워버렸다고 분석한다.

섹스와 돈이 결합된 뉴스는 상품가치가 높다. 문제는 거대 매체들의 의제설정에 많은 정력이 낭비되고 많은 뉴스가 잊혀지며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는 데 있다. 최근 '꿀벅지' 논쟁이나 고 장자연 씨 사건의 폭발적 흡인력은 한국의 미디어 산업이 역시 섹스와 돈을 두고 돌아감을 보여준다. 그 이후 여성 연예인들의 노동 처우가 나아졌는가.

정치경제학과 재혼하는 페미니즘

미디어 분석을 위해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을 모두 사용하고자 한 저자들은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사회주의와 여성주의의 해석틀을 함께 빌리고자 했다.  급진 분리주의 여성주의가 정치경제학과 결별한 이후 페미니즘은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불편한 동거', '이혼'이라고 표현할 만큼 긴장이 흘렀고 선택의 압박도 있었다.

정치경제학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만큼 젠더 문제를 결코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이는 또다른 양상으로 드러났다. 문화연구의 흐름은 소비자를 주체로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물질적인 토대와 멀어졌다. 여성학 이론이 현장의 활동과 멀어지고, 흑인 페미니즘의 등장은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에 비판을 더했다. 다시 화해가 필요할 때다.

"페미니즘과 정치경제학이 이론적 우호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들 간의 우호 관계는 계급에 의한 계급 분석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에 존재하는 구조화된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통합의 문제, 복합성의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도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63쪽 본문 중)

정치경제학의 환상을 벗기고 여성의 이름으로 쓰기.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은 방법론 자체에 대한 고민이 되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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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oy media
2009/10/26 08:27 2009/10/2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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