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빠져 죽었다고 다른 죽음보다 더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아. 다만 우린 살아있을 뿐이야. 그러니 어서 키스해." (<테레즈 라캥> 대사 중)
심연에 닻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고개를 돌린 지옥에 한 쪽 발을 담그고, 좁고 어둡게 한 길을 판다. 랭보는 위악적으로, 카프카는 기괴하게, 하얀 뺨을 가리고 친오빠의 발작 이야기를 하던 지인은 청량하게. <테레즈 라캥>의 에밀 졸라는 해부학적으로.

벽장 속에 피붙이를 가두어 봤다면
극중 고아였던 테레즈 라캥을 길러준 시어머니는 가족의 불행에 동참을 요구한다. 남편은 전신 마비의 불행 속에 이기적인 소년으로 머물러 있다. '병신 가족'을 둔 탓에 평생 바깥에 나가지 않고 살던 이들에게 남편의 친구가 방문한다. 테레즈 라캥에게서 정열을 일깨운 친구는 남편을 살해하지만 죄책감으로 환영을 본다.
투명한 아크릴 판이 배우의 뒷모습까지 비추는 무대에는 붉은 칠이 된 목재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다. 상복처럼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대사를 건네지도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뼈가 부딪칠 것만 같이 메마른 '연극적 가난'은 성행위 장면에서조차 배우들의 미세한 근육 변화를 관객의 해부대 위에 올린다.
인물들은 진저리치고 쥐어뜯으며 출구를 찾지만, 간헐적인 암전만이 시간의 변화를 암시한다. "악덕과 미덕은 다 같이 황산이나 설탕처럼 화합물이다"라고 원작의 제2판 서문을 쓴 졸라는 이들에게 어떤 인간적인 성취나 극복도 허락하지 않는다. 실험실 바깥의 누군가가 계량한 듯, 도저한 절망 뿐이다.
아들의 살해를 두고 "홀가분해져서,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는 어미의 단말마는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것은 이성을 떠나 몸으로 오는 욕망과 같이 유전자에 새겨진 운명이다. 도덕과는 이미 상관이 없다. 사회로의 출구가 없느냐고, 왜 내민 손을 잡지 못하느냐고 비평하지만, 우리는 안다. 여전히 누군가는 지옥을 산다.
배우 김문희 씨 "덩어리 대 덩어리로 관객과 만났으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은 19세기 파리의 실제 수퍼마켓을 배경으로 했다. 도시노동자 생활의 비참함이나 농민의 도시집중 등 파리 변두리의 서민에 골몰했던 졸라는 당대 자연주의 사조를 이끌었다. '소설은 과학'이라고 할 만큼 엄밀한 관찰에 주력했으며 유전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인 동명 연극은 11월 4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랐다. 극단 동(연출 강량원)에서 테레즈 라캥 역을 맡은 주연 배우 김문희 씨는 "영화에서는 많이 보이는 극도의 사실주의, 시대를 떠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며 덩어리 대 덩어리로 관객과 만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