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인종의 뉴욕 거리에는 이탈리아 음식점과 홍콩 출신 주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이 있다. 코리아타운에서는 설렁탕을 팔았고 다운타운에는 차이나타운이 널찍했다. 아침 8시, 호텔을 나와 일찍 문을 연 멕시칸 음식점에 들어섰다. 3$짜리 스크램블에는 싱거운 감자가 섞여 나왔다. 뉴욕 시내 어느 음식이나 그렇듯 양은 많았다. 식사 후 찾은 컵케익 가게는 <섹스 앤 더 시티>로 유명한데 뉴욕 중심가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모카, 초코크림 컵케익은 맛이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위에 얹은 갖가지 꽃문양이 섬세했다.
센트럴파크, 샐린저 대신 만난 조세프(Joseph)
'미드'만큼 허다하게 알려진 뉴욕 예술가 중 한국 십대들을 사로잡은 소설가는 단연코 J.D.샐린저. 20일 날이 밝자마자 "오리들을 볼 수 있는 센트럴파크 입구를 추천해 주세요"라고 안내를 받아 지하철역 81번가에 내렸다. 남북으로 약 4킬로미터, 동서로 약 8백미터, 전체 너비 340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뉴욕의 녹지가 펼쳐졌다.

센트럴파크는 1850년 시민 캠페인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홀든이 "겨울이 오면 어디로 가나요?"라고 묻던 오리들은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중. 호숫가를 따라 뉴요커들이 큰 개를 데리고 조깅을 했다. 시내 쪽의 옛 건축물 사이로 노란 택시들이 새어나왔다. 마차 대신 사람이 앞에서 자전거로 끄는 인력거를 탔다. 한 바퀴는 60$, 반바퀴는 약 30$다.
좌석에 앉자 목소리가 진중한 흑인 운전수가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피비가 타고 돌았던 회전목마와 동물원 물개쇼를 보고 싶었지만, 자꾸 '내려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내대로 멀찍이서 체스놀이장이며 <나홀로집에> 촬영지, 아이스 스케이트장이니 하는 명소들을 스쳐갔다.

미국에 왜 왔느냐, 혼자 왔느냐 묻던 그는, 사업차 뉴욕에 왔다는 말에, 회사의 오너냐고 물었다. "너무 작은 회사라 당신이 더 부자일 걸요" 했더니 갑자기 운전을 멈추고 돌아봤다. "하하, 당신 웃겨요." 한참 시프메도우를 지날 때에는 갑자기 NYPD가 차를 타고 쫓아왔다. 수배전단지를 받아 주머니에 구겨 넣더니 그가 싱긋 웃었다. "제 친구를 찾고 있는 거예요, 안심해요."
이후 미국 비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거리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는 공원의 동쪽 입구, 그랜드 아미 플라자 동상 앞에 와서 우리는 작별했다. 동전을 셀 줄 몰라 팁으로 있는 동전 다 꺼내 준 내게, 그가 이름을 묻더니 악수를 청했다. "전 조세프(Joseph)예요, 크리스챤 네임이죠." 세번째 퇴학을 당한 방황 청소년 홀든도 잠시 조롱을 접어둘, 따스한 아침.

조지아 오키프 전시 여는 위트니 뮤지엄
센트럴 파크 바로 아래의 어퍼이스트는, 유대인 박물관, 라틴아메리카 작품을 전시하는 델 바리오 뮤지엄, 구겐하임 뮤지엄, 위트니 뮤지엄을 비롯해 미술관이 밀집한 문화의 거리다. 말쑥한 정장의 백인들이 오가고 랄프로렌의 수천달러 짜리 옷이 진열되는가 하면 거리 디자이너들이 80$짜리 금세공품을 파는 부유한 동네다.

위트니 뮤지엄은 1930년 조각가 위트니가 문을 연 이래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을 처음 전시하기도 했으며 20세기 이후 미국 현대 작가 전시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9월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전시를 열고 있다. 오후 1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는 급작스런 발표에도 관람객들은 끈기 있게 줄을 섰다.
"그림 엽서는 많이 갖고 있지만 실제는 처음예요"라는 은퇴한 교사는 "이 사람들 다 오키프 전시를 보러 온 거예요"라고 귀띔했다. "제 성도 O'keeffe예요. 정말 오키프와 관계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라는 폴란드계 할머니도 합류했다. 그는 한 블럭 아래에 폴란드 박물관을 건립 중이라며 주소와 소개장을 써주었다.

오디오 안내기를 빌려 들어선 뮤지엄 3층은 조지아 오키프의 초기 무채색 목탄화에서 시작했다. 연대별로 구분한 설명은, 오키프의 거처 이동이나 신상에 일어난 큰 변화와 더불어, 대표작의 특징을 꼼꼼하게 짚었다. "말이나 형상은 실제를 포착할 수 없다"는 오키프의 육성이 오디오 안내기에서 흘러나왔다. 사람 반신상만한 꽃그림의 황홀한 색채에 호흡이 아슬아슬해졌다.
전시장 한 방을 채운 건 오키프의 후원가이자 남편이었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찍은 오키프의 누드다. 그의 누드 발표 이후 오키프의 그림은 전에 없이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집중되어 읽혔다. 전시는 이외에도 뉴욕에 이사왔을 때의 창틀 밖 풍경, 스티글리츠의 사망 이후 뉴멕시코로 거처를 옮긴 이후 황량한 해골 그림까지 오키프의 전 생애를 따라가며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