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자이니치 여성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오모니'라는 고유명사를 일본어 속에 섞어쓰는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학교와 도쿄 민단의 흔적을 좇아 기획안을 쓰고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다. 민족의 담론에서 거리를 두었기에 굳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3세대를 찾았다. 남북의 이념으로 나눌 수 없었기에 화가와 가수, 예술가를 찾았다. 일제시대 민족의 디아스포라에 앞서 가부장제는 그보다 오래, 여성의 디아스포라를 남성 씨족 대를 이어 전해왔다. 인터뷰이는 그래서 굳이 여성이어야만 했다.

이듬해 1월, 다큐멘터리 작업 중 때마침 터졌던 <요코 이야기> 사태에서 자이니치 여성운동가 신숙옥 씨의 자료는 유효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전쟁 속 민족 대신 여성을 보자는 머릿기사가 나가자, 한달 여 뒤까지 민족 단체의 성명서가 날아왔고 욕설을 담은 쪽지가 기자 프로필을 타고와 쌓였다. 다큐멘터리는 완성되지 못했다. 공동감독과 날선 언쟁을 벌인 날 이후 촬영테입은 그대로 묻혔다. 다시 꺼낼 용기가 날까 싶던 문제의식은 몇 년이 지난 뒤, 쿠바의 경쾌한 가락을 타고 뜻밖으로 깨어났다.

시간의 춤시간의 춤 - 10점
송일곤

물처럼 흐려져간 피와 고향과 분노

인디스토리를 통해 배급된 송일곤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은 한 달을 쿠바에 머무르며 이제 우리가 보기에는 쿠바인에 더 가까운 한인후손들을 찾아갔다.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 성공한 혁명, 북한과의 유일한 수교국이자 미국과 맞장뜬 나라. 쿠바로 100년 전 흘러들어간 한인 300여 명이 있었다.

1905년 제물포 항에서, 멕시코로 떠난다는 가축 수송용 영국 선박 일포드(Ilford)호에 1033명의 조선인이 몸을 실었다. 두 달 반의 항해 후 도착한 곳은 애니깽(에네켄) 농장이었고 노예노동을 하며 뱃삯까지 갚아야 했다. 4년 후 돌아갈 수 있다던 고향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쿠바로 옮겨갔다. 한복을 입고 올드랭사인 가락에 애국가를 부르며, 집 안에 풍경을 걸어놓고 한인끼리의 결혼을 우선 허락하며 조선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쳤다. 상해 임시 정부에 독립자금을 송금했다. 후손들은 쿠바에서 화가와 발레리나, 대학교수, 가수, 산테리아 사제가 되었다.

어쩌면 혁명조차 필요없던 전사(前史)

한 세기가 흘렀다. 이민 1,2 세대들이 공동묘지 세멘테리오 콜론에 잠들어가는 동안 5세대에 이르러서는 피도 한국말도 이름도 흐릿하게 묽어갔다. 물처럼 흐려져가는 건 결코 잊지 않겠다던 고향의 주소, '돌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약속을 집단으로 유폐한 사기극, 자본과 무언가에 대한 분노다. 그래서 '꼬부랑 할머니'와 '자장가'의 서툰 가사는 섪다.

쿠바는 역사 속에 반복된 집단적 패배를 승리로 돌려놓았던 나라다. 때마침 쿠바 혁명 50주년 행진을 포착해 함께 담은 영화는 그러나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민중의 혁명에도, 민족의 정체성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고사랑 이야기에 긴 시간을 고정한다. 헤로니모 임이 아내에게 보낸 고백의 편지와, Rico Vacilon(나쁜 남자)를 노래하는 세실리오의 결혼 이야기다.

영화를 열고 닫는 한인 5세 발레리나 디아날리스의 탱고와 살사는 단조를 모조리 없앤 강렬한 비트의 노래 속에, 강풍에 뒤틀릴 근육을 차라리 먼저 비틀면서. '엎어버리자'고 말하기 전에 '살자', '사랑하자'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영혼이 예술을 타고 불시작한 이야기. 무희의 몸을 빌려 쓰는, 혁명조차 필요없던 전사(前史), 어쩌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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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14:47 2009/12/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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