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위대한 침묵 - 8점
필립 그로닝

세상에는 여러 가난이 있다. 한국에서 12월 초 개봉한 <위대한 침묵>의 '언어적 가난'은 카르투지오 수도회와 필립 그로닝 감독, 여러 영화제가 공통으로 선택한, 정점의 금욕이다. 언어를 지운 음향 속, 정적이 감도는 162분의 러닝타임 끝 10분은 구두밑창을 다듬는 소리로 불현듯 청각을 깨운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프랑스 알프스 해발 1300m 그르노블 북쪽 샤르트뢰즈 계곡에 1084년 쾰른의 성 브루노에 의해 세워졌다. 한국에도 지부를 두고 있으며 가장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원으로 알려져있다. 사제들은 외지고 고요한 곳에서 거친 모직 옷을 입고 사도직도 허용받지 않은 채 침묵 속 수도에 정진한다.

금욕적인 수도원, 탐미적인 미장센

수도원에서 기도, 연구, 식사, 취침은 고독한 독방 생활을 통해 이뤄지며, 밤기도, 아침미사, 저녁기도, 일요일과 대축일에 함께 모여 식사하고 대화한다. 필립 크로닝 감독은 촬영 요청 15년만에 '일체의 인위적 음향 사용 불가, 단독 촬영, 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 금지'라는 조건으로 촬영을 허락받았다.

영화는 영상미학의 측면에서 전혀 금욕적이지 않다. 밤낮이 바뀌는 알프스 계곡의 원거리조명, 눈 쌓인 수도원의 서늘한 복도와 하얀 사제복의 수도자들, 화려한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하루에 이르기까지 대사와 음악을 쓰지 못하는 대신 감독의 모든 공력을 프레임에 쏟아부은 듯 탐미적이다.

인공조명 없이 기도, 식사, 설거지, 청소를 따라간 영화는 책장 넘기는 소리 이면에 설핏 바람 부는 소리와 시선 옮기는 소리가 들릴 듯 하다. 촛불을 켜고 모여 성가를 부르고 딱딱한 바닥에 쓰러져 잠드는 수도사들은 오래 풍화된 명화의 모습이다. 노트에 가지런히 적어넣는 성구도 언어가 아닌 미장센에 충실하다.

'신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왔다'는 대사처럼 종교는 현실의 영역이다. 교단은 세력을 형성하며 종교의 변두리에는 때때로 군대조차 개입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나니'라는 성경 구절을 따라 사제들이 풀 뜯는 소처럼 풍광으로 녹아든 영화의 롱테이크는, 모든 사상에 깃든 원형에 다가가려 적어도 애쓴다.

마지막 10분여를 남기고, 침묵을 깬 맹인 사제는 '앞을 보지 못하게 한 신의 섭리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구석구석 비치는 햇살은 사람에게도 닿는다. '내가 바로 그 분이다'라고 세속과 다른 계단을 문득 열어보인다. 언젠가 도심 한낮의 길모퉁이, 노점을 펴고 앉아 팔이며 다리며 모두 내준 채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던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그 이세계의 화창함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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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12:16 2009/12/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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