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 호남선 KTX로 첫눈 내리는 목포를 찾았다. 전라남도 목포시는 서남해안 끄트머리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1897년 조선에서 네번째로 개항했으며 국도 1,2호선의 기점과 호남선의 시발점이 됐다. 일본인거리와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목포의 눈물>을 비롯해 무수한 노래의 소재가 된 사연 많은 동네다. 홍어가 숱하게 쌓인 수산시장과 루미나리에 화려한 오거리의 사람 사는 모양새는 격의가 없어 차라리 비릿하다. 도시 전 지역의 자랑도 상흔도 어느 것 하나 내치지 않고 촘촘한 그물에 건져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인 이 곳, 목포는 항구다.
심성 고운 유달산, 자생하는 역사
노령산맥의 서남단에는 해발 228미터의 아담한 봉우리가 있다. 40분여면 한바퀴를 돌고 내려오는 유달산이다. 심성고운 유달산에는 문화와 역사가 자생한다. 노적봉과 시민의 종을 들러 맞은 편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일본 통감부가 1908년 일본 시각 정오에 맞춰 포를 쏘아올린 오포를 지나면 유선각에 닿는다. 한글 필체로 아기자기 새겨넣은 시구는 독특한 현대미다.
함경도와 더불어 유배지였던 전라도에는 백일홍이 많다. 백일이 지나면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원하며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라도 말로 '깨벅쟁이 나무'라 부르는데 가지가 매끈매끈한 벌거숭이라는 뜻이다. 산을 깎고 담을 올리는 대신 있었던 바위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관광자원 삼았다. 고래바위, 장미바위 지나니 일등바위가 봉우리 꼭대기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탁 트인 목포 전경을 본다. 잘 구획된 일본인 거리 너머 전망좋은 삼학도와 다도해가 펼쳐진다. 반대편에는 달동네로 쫓겨들어간 조선인들의 민가가 빽빽하다. 시야 바로 아래에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불교를 옮겨그려 그려넣은 거대한 불화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특정자생식물원과 조각공원을 거쳐 심심하지 않게 내려온다.




조선인 목숨 위에 세워진 일본인 거리
목포역과 유달산 사이 중앙로에는 국도 1,2호선 기점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있다. 일본인들이 진행했으나 실제 2호선 도로를 닦은 인력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잡혀간 조선인이었다. 기념비 뒤로 구 일본영사관 건물이 보인다. 일대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로 1900년 12월 완공되었다. 붉은 벽돌 외벽에 푸른 지붕을 댔는데 6.25 당시 총탄 자국 외에는 지금도 균열 하나 없다. 뒷쪽은 조선인을 동원해 파놓은 방공호다.
1920년 나주에서 신축이전한 구 동양척식주식회사도 남아있다. 흰 내벽 기둥마다 일장기를 상징하는 타원을 양각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활용 중이다. 개항 당시 목포의 면모부터 일제 침략사, 조선 마지막 왕조, 광복까지 사진을 전시했다. 금고에는 면화 재배 역사가 새로 들어섰다. 몸이 뒤틀린 채 죽은 일본군 성노예 사진이나 목이 잘린 조선인의 모습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잔혹한 침략사다.
반듯하게 구획된 일본인 거리를 따라 일본 가옥이 이어진다. 이웃집 토토로에 나올 법한 안락한 풍경이 직전의 참상과 이율배반적이다. 카페로 변신한 적산가옥을 비롯, 현재는 목포 출신 사업가들이 집주인으로 문패를 바꿔달았다. 한반도 지형 호수, 단풍잎 떨어지는 호수와 눈 맞은 동백꽃, 동글동글 쌓은 작은 탑, 1930년대 가꾼 일본식 정원은 이훈동이라는 사업가가 인수해 이훈동 정원이라 불린다. 지붕 너머 유달산은 소복소복 눈 내리는 한 폭의 족자다.




나무 아래 겸허한 죽음,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동쪽, 샹그리아비치 호텔에서 하룻밤을 난다. 인근의 갓바위 문화타운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학관 등이 도보 거리로 밀집한 학습문화의 장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천오백년 전 난파선은 청자며 놀이용 주사위, 장기 같은 것들을 잔뜩 싣고 있었다. 문예역사관 화폐전시실에서는 한국의 별전과 중국 도자기 화폐를 비롯한 세계의 소(小) 경제권을 만난다.
해변을 따라 남항을 지나 삼학도로 건너간다. 간척으로 메워졌던 세 섬을 현재 다시 복원 중이다. 목포의 문화해설사는 아무렇지 않게 <춘향가>의 판소리 한 가락을 뽑아낸다. 남도가락 뿐이랴. 일제강점기 사랑받은 '목포의 눈물', 가수 이난영의 고향도 이곳. 삼학도의 난영공원 노래비와 함께 한 그루 나무 밑, 한국 최초의 수목장으로 겸허하게 잠들어있다. 요트들의 항구 요트마리나를 볼 수 있으며 김대중 평화공원도 조성 중이다.
목포역으로 돌아오는 길, 목포종합수산시장을 들린다. 홍탁삼합의 홍어가 보도블럭 위까지 마름모로 쌓여 눈을 맞는다. 뻘에서 잡아올린 낙지를 참기름 쳐 고소히 끓인 연포탕과 백년 전 일본인 입맛대로 졸인 갈치조림이 목포의 먹거리다. 1박 2일 여정, 해안의 숱한 이야기는 생사를 담고 있다. 뭍에서 온 이방인은 여행을 마치고 며칠 앓아야 했다. 면역 이전에 밀려드는 역사. 목포는 항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