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만합창단 -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시대의창
뿔이 났었다. 여직원 '미스 김' 취급하던 사무실 영감님에게. 약속한 에어컨은 대체 언제 틀어주느냐고. 묻고 싶었다. 깍듯이 '대표님' 호칭 해줘도 ''영희 씨'하던 연하남들에게. 넌 대표고, 난 경리냐고. 불만을 말하면 왕따의 문이 열릴까 무섭지만, 말 안하고 쌓아놓다보면 결국 '삐뚤어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를 연습장 삼아 불만을 풀어내지만, 작은 사람들의 불만은 때로 들어주는 귀조차 없다. 그러나 '삐뚤어지기' 전에 참고할 경쾌한 불만합창단이 있다. 핀란드와 독일 태생의 예술가인 텔레르보 칼라이넨, 올리버 코차 칼라이넨 부부가 유럽에 유행시킨 '뒷담화의 예술화, 광장화'다.
말못한 불만, 합창으로 들려드려요
한국화한 2008년 '불만합창단' 페스티벌이 올해 1월 책으로도 나왔다. 관악, 북아현동, 익산, 진주 등 전국 8개 지역에서 조직된 합창단이다. TV시리즈 제작의뢰까지 받으며 알찬 성공을 거뒀다. 동명의 책은 행사를 주최한 희망제작소의 두 연구원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어 썼다.
행사의 시작, 가사를 쓰고 노래로 부르겠다는 '불만'을 품고 속속 나타난 건 익산희망연대, 장애여성공감, 봉천동 드림한누리공부방 등의 시민단체들. 그 외에 온라인을 통해 모집된 '서울 멋대로 합창단'도 있었다. 가수 김C도 참여해 저작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직접 들을 수 없어 아쉬운 합창은 시원한 가사로 꽉 짜인 스트레스를 성글게 풀어준다. "쿠폰으로 시킨 피자 맛이 없어", "회사 동료가 날보고 아가씨래 당신은 30년대 태어났니"부터 "집회할 땐 마스크를 못 써 난 감기에 걸렸는데도", "늘어난 건 비정규직 뿐, 그마저도 장애인은 받아주는 곳도 없어"기타 등등.
그 외에도 책은 희망제작소의 조직문화와 박원순 대표의 운영 스타일을 "잠이란 걸 모르고 월화수목금금금한다"고 소소하게 설명하고 그 안에서 '불만합창단'이란 기획이 탄생한 흐름을 투명하고 편안하게 보여준다. 현실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을 풀어준 건 뜻밖에도 스스로를 '원순 씨'라 칭하는 유명인의 겸손함이었달까.
"함께 불만을 말하는 과정이 희열이고 의미"

3월 초입 희망제작소의 평창동 사무실에서 저자들과 마주 앉았다. 곽현지 연구원은 "처음에는 행사 기획이 망설여졌다"고 털어놓았다. 불만합창단이 외래산이었던 만큼 한국에서 성공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드러내기를 장려하는 서구 유럽사회에 비해 우리나라는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미숙한 편이 아닐까.
또 한 가지, 한국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극히 일부라 유럽에서처럼 거점지가 될 지역 단위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시민단체의 회원, 단체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한 한국형 불만합창단이 탄생한 계기이기도 했다. 결과는? 유럽에서 합창을 끝내고 단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뭉클한 '한국의 불만합창'을 끌어냈다.
80여명의 다양한 시민이 모여 합창을 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원칙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김이혜연 연구원은 "불만의 가이드라인을 긋지 말고 주제도, 주체도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모두가 합의한 불만만을 합창할 것"이라는 원칙도 있었다. '1등 아니면 꼴찐가'처럼 공감이 쉬웠던 주제가 있던 반면 아닌 것도 있었다. 조율의 와중, 네 불만이 내 불만이 되어갔다.
알래스카의 불만합창단은 1년에 한번씩 간다는데, 이들의 계획은 무얼까. 정해져있는 답이 아니라 원하면 또 할 수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의 목표는 '사람들과 이렇게 소통하는 방식이 있구나 나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해봐야지' 하고 알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익산에서는 불만을 실제 해결하는 흐름도 이어졌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과정이 제일 중요한 행사였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