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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충청북도 영동 역에 도착한다. 고지에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역인 영동은, 온도가 높고 비가 많지 않아 포도 재배에 좋다. 포도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 재배에도 유리한 지형이다. 사과, 호두, 배, 곶감도 많다. 메이빌이라는 공동 상표를 만들어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펼쳐지는 영동 포도축제 기간에 경부선 KTX를 제외한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는 영동 역을 지난다. 지난 해에 공식적으로만 10,000여 명이 보라색 풍선을 들고 다녀갔다. 지난 주말, 4회째를 맞이하는 올해 영동 축제를 미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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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의 주선(酒仙) 내리는 용두 공원 ] 포도 축제가 열리는 곳은 영동역 인근에 위치한 용두공원이다. 탁 트인 공원이 한참을 이어진다. 분수가 물을 뿜고 넓은 공원 전체에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포도 밟기와 포도마라톤대회, 나만의와인만들기체험 등과 난계 국악 축제가 함께 열리는 곳이다.
 
공원 곳곳, 축제에 예(藝)를 더하는 작가들의 조형물이 놓여있다. <일탈>이라는 거대한 잔 앞에 섰다. 들여다보는 구경꾼의 모습을 반사해내는 반질반질한 철 재질로, 기울어져 땅에 박혀 있다. 공원의 무대까지 올라서면 정자로 이르는 산책길이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수레 등 멈춰서 사진 찍을 만한 소재들이 숨어있다.

작은 호수와 커다란 얼굴, 거꾸로 선 사람 등의 조각을 지나 영동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 위에 선다. 정자 위 한 편에는 영동 역을 비롯한 시내가, 다른 한 편에는 널따란 공원에 포도 모양 철제 조형물이 양귀비, 과일 탑과 함께 서있는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한숨 돌리고 내려온다. 높은 지형에 그림자 없이 햇볕이 내려서는 나무 계단에는, 인상파 모네의 그림처럼, 산책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빛과 함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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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한 토굴 속 포도주통 숨쉬는 와인코리아 ] 공원을 나와 4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국내 최대의 와인생산공장 와인코리아에 도착한다. 95년부터 영동의 포도를 수확해 와인으로 만들고 있다. 생산되는 와인은 총 4종류. 스위트, 누보, 드라이, 화이트가 나온다. 복분자와인도 있다. 와인트레인을 타면 와인공장 견학을 함께 할 수 있다.
 
폐교를 개조해 만든 성 모양의 와인 공장 입구에는 작은 종이 달려 있다. 포도넝쿨이 그늘을 드리운 복도를 따라 걷는다. 코르크 마개와 라벨, 와인 병들이 늘어선 가운데 와인 압착기, 제조 기계 등을 지나면 와인 보관소가 나온다.

숙성창고의 토굴에는, 와인을 숙성시키는 통들이 서늘한 방 안에 줄줄이 들어차 있다. 와인 라벨을 전시해놓은 작은 전시장도 있다. 박신양 와인, 마니산 와인 등 한국 와인의 역사와 함께 한 이름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와인 코리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체험은, 차디찬 와인에 발을 담그는 족욕 시간이다. 연인들끼리 발을 담그고 한 잔씩 소믈리에의 와인을 받아 시음한다. 첫 발을 담그면 얼얼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붉고 투명한 와인이 통에 가득하다. 드라이한 와인부터 단 와인까지 차례로 시음용 와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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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글한 자옥 익어가는 포도밭 ] 와인을 마신 다음, 와인을 만들어볼 기회도 따라온다. 영동군의 전체 포도밭 면적은 2,198헥타르. 14년 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포도'하면 '영동'이 떠오르는 대표적 과일이다. 전국 생산량의 12.8%를 차지한다.

영동군에서 축제용으로 5000평 부지의 땅을 매입해 포도를 따는 체험을 하도록 제공한다. 포도를 담는 상자를 직접 접어 전지 가위와 함께 포도밭으로 들어간다. “음주하셨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영동군청의 김호기 주사가 덧붙이는 말이다. 술김에서일까? 포도알을 하나씩 빼서 먹는 관광객들로 군청은 가끔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

입구부터 끝없이 길게 펼쳐진 포도밭에는 붉은 빛 포도가 안 쪽으로 점점 검게 익어가고 있다. 포도 껍질에 당이 하얗게 올라와 서린다. 한 명당 딸 수 있는 포도는 세 송이. 일반 캠벨 종의 경우 5송이까지 제공된다. 한 송이 한 송이 가지를 꺾어 상자에 담을 때마다 묵직함에 상자를 든 팔이 아래로 툭툭 떨어진다. 탱글탱글한 포도알들은 손이 저절로 갈 만큼 탐스럽게 열려 있다.

포도알을 따서 입 안에 물면 혀 위에 가득차는 보드라운 육질. 자옥이는, 씨를 뱉어내지 않아도 되는 개량 품종 거봉이다. 식용 포도로 한 가족이 한 송이를 먹어도 배가 찰 법한 튼실한 포도알들이 꽉 차 있다. 와인을 만드는 품종은 알이 작고 당도가 높은 캠벨로 포도 축제 관광객들이 딸 수 있는 포도이기도 하다.

포도송이를 들고 이동한 모리 마을에서는 나만의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 흔히 만들어 먹는 포도소주와 달리, 포도를 숙성시켜 만드는 포도주다. 작은 병 2개들이 양이 나오는 플라스틱 통 하나씩을 받는다. 영동대학교 와인발효식품학과에서 나온 전문가가 포도주에 대한 설명을 한다.

포도를 손으로 잘근잘근 터뜨려 넣고 설탕과 효모를 붓고 뚜껑을 닫는다. 분량을 잘못 맞추면 통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이 따라온다. 다음 날이 되면 포도껍질은 위로 떠오르고 자줏빛 액체가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열흘을 두었다가 천으로 찌꺼기를 걸러내 액체만 따라내 다른 병에 밀봉한다.

서늘한 냉장고 등에 가둬두길 백 일이면, 손을 땄던 포도가 포도주로 변한다. 모리 마을을 방문해 포도주 만들기에 참여한 객들에게는 중요한 제조일정을 문자로 보내 필요한 때 되살려준다. 통에 자그마하게 설명이 붙어있기도 하지만 객들을 잊지 않고 챙기는 마을의 마음씀이 다붓하다.

포도주를 뚜껑 닫아 챙겨두고 손가락 두께만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해가 지는 하늘을 본다. 낮은 지붕 위로 희미하게 무지개가 걸린다. ‘금강모치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 옥수수 걸려있는 흙 집에서 하룻밤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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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하고 활기찬 농촌 체험 마을 모리 ] 평균연령 80세의 장수마을 모리에서는, 백발을 단발로 늘어뜨린 할머니가 소리도 없이 옆길을 걸어 지난다. 마을의 서낭당에서는 매해 정월 대보름, 달집놀이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각기 해온 음식을 바쳐놓고 제사를 지내며 한 해의 액운을 쫓는다.

곳곳에 주홍색 호박이 선연히 사람을 놀래키고, 어미황소와 송아지가 백구와 한 외양간에서 꿈뻑 꿈뻑 사람을 쳐다본다. 장독대 옆으로는 숫돌이 놓여 있고, 길게 깔린 길가에는 쐐기가 잎사귀에 숨죽여 붙어 있다. 계곡의 동굴에는 박쥐 가족이, 농장에는 염소부부가 각기 보금자리를 잡고 제 몫의 삶을 살다 간다.

옛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하지만, 외지의 객이 와도 불편함은 조금도 없다. 예쁜 간판에 집 이름을 써서 붙인 새 흙 집을 민박용으로 사용한다. 모리 마을은 문화진흥청에서 주관하는 테마마을 3,2위를 두 해 연달아 수상했다. 1억여 원을 들인 작은 광장의 한 켠에는 옛날식 커다란 그네와 널이 정자 옆에 놓여 있다.

새벽 네 시경 수탉이 목청껏 울어대는 모리 마을은 아직 어둠이 깔려 있다. <봄날은 간다>의 은수와 상우가 애잔히 열정을 태우며 만났던 길처럼, 안개에 휩싸인 1차선 도로가 갈기산을 옆에 끼고 어스름이 뻗어있다. 마을의 막내 격이라는 할아버지가, 긴 장대를 들고 개구쟁이처럼 뒷산을 겅중겅중 뛰어갈 때쯤 날이 완전히 밝는다.

날이 밝고 첫 걸음 한 이웃 마을의 장수풍뎅이 연구회. 서늘한 창고에는 아이 손만한 굼벵이가 잠자고 있다. 딱딱한 껍질이지만 만지면 사람 팔뚝 살을 만진 듯 물컹하다. 3년충은 간에 좋은 명약으로, 장수풍뎅이연구회에서는 성충에 이르기까지의 전 단계부터 보존한다. 날개를 펼친 성충 장수풍뎅이가 크기를 달리 해 여럿 박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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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계 박연의 혼 머무는 국악의 고장 ] 모리 마을을 떠나 영동 역으로 돌아오기 전, 들릴 곳이 또 하나 있다. 과일바구니를 머리에 인 주선(酒仙) 디오니소스는, 축제의 신이기도 했다. 포도와 과일의 고장 영동 축제에는 난계 국악 축제가 함께 어우러진다. 국악을 집대성한 난계 박연의 고향인 때문이다.

한국의 삼대 악성 중 한 명을 탄생시킨 영동은 우리 소리를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 피리 모양 전주가 가로등을 매달고 있는 곳, 난계국악박물관과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 국악기 제작촌, 난계사, 난계생가가 모여 있다. 시원하게 트인 길에 널찍한 터를 뒀다.

국악박물관에는 편종, 북, 향피리, 소공후, 12율관까지 놓여 있다. 국악실과 난계실로 나눠 100여 종의 국악기와 국악의상, <악학궤범>을 비롯한 고문서, 12인 명인명창소개 등을 갖췄다. 난계 박연은 조선 태종~단종 때에 이조판서와 대제학에 이르렀다. 그가 완성한 제례악은 아직도 종묘에서 사용된다. 재료의 두께로 소리를 조절한 편종을 지나 난계 부부의 영정 앞에 손을 모은다.

박물관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한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에서는, 장구를 앞에 두고 기본 장단을 배운다. 국악을 전공한 전문 강사가 가르치는 장단은 야무지고 실하다. 여행객 부부가 나란히 앉아 심드렁하게, 그러나 정이 뚝뚝 묻어나게 장구를 친다. 조임새에 궁, 채까지 갖춰진 전통 타악기의 꿋꿋한 소리가, 가뭄진 마음에 시원하다.

국악관의 큰 북을 둥 둥 울리고 1층짜리 건물 높이의 해금 모형을 지난다. 국악기제작촌에서 아이들과 외국인을 위한 체험으로 인기가 많다는 장구 만들기에도 참여할 수 있다. 오동나무 몸체에 쇠가죽을 댄 장구는 실제 장구보다 작은 크기로 목에 걸기 알맞다. 우리 타악기 장구는 전통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음률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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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계 폭포 앞 우렁 쌈밥을 입에 넣다 ] 장구를 치며 허기진 배는 폭포가든에서 달랜다. 14년 전통의 우렁이 쌈밥이 나오는 집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대접하지 않을 만큼 준비가 철저하다. 40종의 재료가 들어갔다는 쌈장은 구수하고 매콤하게 쫄깃한 우렁과 어우러진다. 삼도의 말씨가 섞여든 금강 상류에는, 삼도의 맛도 절묘하게 하나로 녹아 있다.

밥심으로 배를 두드리며 옥계 폭포로 올라간다. 15분 여 정도 천천히 걸으면 절벽 아래로 시원히 떨어지는 30m 높이의 옥계 포포를 만난다. 이생강이 대금을 불면 새들이 제 동료인 줄 알고 몰려들었다고 하던가? 박연 선생이 자주 피리를 불었던 이곳에서는, 호랑이도 구슬퍼했다는 옛 소리가 폭포를 휘돌아 귓가에 떠돈다.

내려오는 길에는 자리를 깔고 앉아 더위를 식히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자갈의 잔 무늬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계곡, 10월이면 단풍의 절정에 달한다는 산줄기를 따라 여행의 마지막을 걷는다. 모르는 사이, 포도주 몇 잔에 이틀이 껌뻑 지난다.

이틀을 2년처럼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포도와 장구까지 한 아름 안은 손에서 포도주가 익는다. 축제의 날이 오면, 불모의 땅 서울을 지나 영동 포도밭에 눕고 싶다. 불행히도 그러지 못한다면, 영동 와인 샤토마니의 향에 취해 남은 한 해를 보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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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1:14 2008/08/18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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